며칠 전 엄 여사께서
우리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 "싸구려"라고 통하는 간판 없는 야채가게에서 사 오신 애호박 두 개.
"싸구려"라는 존재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하자면...
시장통 안에 허름한 가게가 하나 있다.
간판 하나 없지만 늘어져 있는 야채 및 과일들을 보면 누가 봐도 그곳은 야채 가게이다.
오전 시간 탑차 같은 게 가게 앞에 도착하면
그때부터 동네 아주머니들의 몸싸움이 시작된다.
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.
간판이 없는 그 가게는 이 동네에선
-어디 가세요?
-응... 싸구려
라고 하면 다 통하는 곳이다.
그렇게 사 오신 애호박이 냉장고에서 식탁에서 싱크대에서 내 눈에 띈 게 3일째.
-애호박 뭐할라고 사 왔는데?
-아 사실 호박전이 먹고 싶어서 사 왔는데...
추석이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.
추석 때 먹은 전들이 아직 내 피와 살 속에서 분해되지 않고 살아 있는 것 같은 지금.
또 전?
우리 엄 여사는 평소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대뜸 '나 그게 먹고 싶어' 하지 않으시는 분이다.
보통의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....
그렇게 싱크대에 덩그러니 있던 애호박을 잘랐다.
애호박전은 두께가 중요하다.
너무 두꺼우면 잘 익지 않고 계란물이 타버리고
너무 얇으면 식감이 없다--
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
누구에게 배우지 않고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배운 나만의 결론이다.
이제 계란물을 준비!
나중에 양념장을 찍어먹을 거지만 계란물에 소금은 조금 넣어줘야 한다.
난 개인적으로 후추도 약간 넣어주는데
우리 엄 여사는 후추를 싫어하는 관계로 생략!
이제 밀가루 준비!
밀가루는 적당히 준비해둔다.
나중에 남으면 처치 곤란이다.--
밀가루에 잘라둔 애호박 넣고 양면으로 묻혀 계란물로 퐁당!
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(전의 핵심은 기름!)
프라이팬이 뜨겁게 달궈진 것 같으면 약불로 놓고
밀가루 옷과 계란옷을 차례대로 입은 호박전을 하나씩 하나씩
프라이팬에 옮겨 익힌다.
노릇노릇 익은 것 같지만 육안으로는 호박이 잘 익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.
이쑤시개로 호박의 가장자리를 쑥 찔렀을 때 막힘없이 부드럽게 들어가면 잘 익음!
남은 계란물은 미니 계란말이로~
하지만 남은 밀가루는 처치 곤란...
처음 양과 사용 후 남은 밀가루의 양...
다음부터 밀가루는 아주 조금만!!
남은 밀가루는 버리기도 아깝고
결국 내일 점심 메뉴를 수제비로 바꾸게 만든 나의 밀가루 플렉스!
이 간단한 음식을 귀찮아서 하지 않으셨을까?
그렇지 않다.
당신이 먹고 싶다고
당신만 먹고싶다고
당신만을 위해선 어떠한 수고도 하지 않으시는
우리 엄 여사의 잘못된(?) 희생 방식 때문일 것이다.
자식이 먹고 싶을 때,
남편이 먹고 싶을 때까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식욕조차 참고 기다렸다가
함께 먹으려 했던 우리 엄 여사의 지극한 사랑방식 때문일 것이다.
아마도 애호박이 내 눈에 보였던 첫날
-엄마 호박전 먹고 싶다. 호박전 해줘!
라고 했더라면 그날 저녁은 호박전이 식탁 위에 자리 해 있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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